수연은 오전부터 낡은 아파트 304호를 비우고 있었다. 내일 아침 7시에 철거가 시작된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 무렵, 욕실 옆 벽을 공구로 두드렸다. 소리가 달랐다. 속이 비어 있었다. 수연은 벽돌을 빼냈다.
재호야 잠깐
벽 뜯다가 이상한 게 나왔어
왜? 뭐가 나왔어?
봉투. 낡은 봉투. 벽돌 뒤에 숨겨져 있었어
먼지 쌓인 콘크리트 바닥 위에 놓인 낡고 노란 봉투
엄마 뭐야?? 나 방금 봤어
진짜야
봉인 그대로야. 한 번도 안 열린 것 같아
써 있는 게
받는 사람: 이순이
날짜: 1987년 10월 12일
보낸 사람은... "아버지"라고만 써 있어
아버지...
아버지???
37년 전 편지네. 그것도 한 번도 안 열린 채로.
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철거 회사에 줘야 하나. 아니면 내가 열어야 하나
철거 회사는 그냥 버릴 것 같은데
맞아. 이 편지에는 주인이 있어.
이순이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찾아볼게!!
이순이 + 만수동 + 1987
엄마!!!
왜
있어!! 찾았어!!
옛날 인천 신문 기사에
"이순이, 1967년생, 만수동 304호 거주"
1988년에 독일로 이민 갔다고 나와
304호
그거 지금 내가 있는 방인데
헐 진짜??? 소름이잖아
그럼 이 편지가 원래 이 방 주인한테 온 거네.
근데 왜 한 번도 전달이 안 됐을까.
이민 가기 전에 못 전한 것 같아
그럴 수 있어. 그 시절엔 갑자기 이민을 결정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준비할 시간도 없이.
아버지가 벽에 숨겨 뒀다가 직접 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열어볼게
열어봐.
응응!!
수연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안에 편지지 한 장이 있었다. 글씨가 흐릿했지만 읽을 수 있었다.
읽었어
...
뭐라고 써있어?
엄마!! 말해줘!!
짧아. 아주 짧아. "순이야.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네가 떠나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아버지가." 이게 다야.
...
세상에.
편지도 못 받고 독일 갔겠지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도 몰랐겠다
응
지금 이 방에 서 있는데
내일 아침이면 다 없어지잖아
그 전에 이 봉투가 나온 게 다행이야
정말 그래. 😊
이순이 씨 지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독일 교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