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ld nudelsuppe, som kun nordenvinden husker
B2 · Food & Cuisine
2018년 4월 27일, 서울의 한 작은 아파트 거실. 89세의 최순임 할머니는 텔레비전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손녀 지연이 옆에서 과자를 먹으며 중계방송을 보고 있었지만, 순임 할머니의 눈은 화면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못했다. 판문점 정상회담, 그리고 평양 옥류관에서 온 냉면 기계가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할머니, 저거 뭐예요? 왜 냉면이 그렇게 중요해요?" 지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순임 할머니는 금세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 속 대통령이 기다란 흑갈색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장면을 보면서, 그녀는 칠십 년 전의 맛을 혀끝에서 느꼈다. 아니, 느낀 것 같았다. 그 찰나의 순간, 그녀는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1950년 평양의 겨울 거리에 서 있었다.
순임 할머니가 평양을 떠난 것은 1950년 12월이었다. 열다섯 살이었다. 어머니가 "잠깐만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고 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아이란 그런 것이다. 어른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그 희망을 유일한 진실로 믿어 버린다. 하지만 그 잠깐은 칠십 년이 되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평양에서의 기억 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이상하게도 냉면이었다. 매년 겨울, 아버지는 옥류관 근처 단골 냉면집에 가족을 데려갔다. 국물은 소뼈와 꿩 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만든 것으로, 투명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메밀로 만든 면은 거칠고 회색빛을 띠었지만, 씹으면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묘한 탄력이 있었다. 동치미 국물을 살짝 섞으면 새콤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겨울에 차가운 것을 왜 먹어요?" 어린 순임이 물으면, 아버지는 "차가운 걸 먹어야 몸이 진짜로 따뜻해지는 법이야"라며 웃곤 했다. 그 말의 의미를 그녀는 평생 생각했다. 차가운 냉면이 주는 그 따뜻함은, 아마도 고향이라는 온기였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냉면을 먹었다. 수십 년 동안 피란민들이 모이는 동네마다 냉면집이 생겼고, '평양식'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도 많았다. 순임 할머니는 여러 곳을 다녀봤다. 맛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육수가 너무 기름졌거나, 면이 너무 부드럽거나, 아니면 어쩐지 너무 달았다.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맛은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그리고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픈 일이었다. 음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이 음식을 앞질러 버린 것이니까.
텔레비전에서는 남북 정상이 함께 냉면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해설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순임 할머니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서운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의 맛을 평생 그리며 살아온 자신은 결국 그 냉면을 다시 먹지 못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평양 냉면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외교관과 대통령을 위해서.
하지만 그것이 넘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록 자신의 그릇에 담기지는 않았더라도, 끊겼던 무언가가 가느다랗게나마 연결된 느낌이었다. "할머니." 지연이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진짜 평양냉면은 어떤 맛이에요?" 순임 할머니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차고, 맑고, 담백하고, 하지만 그 밑에 오랫동안 끓인 무언가가 고여 있는 맛. 그리고 그것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몸이 따뜻해지는 맛.
"말로는 못 하겠다," 그녀가 말했다. "언젠가 네가 직접 먹게 되면, 그때 알게 될 거야." '언젠가'가 언제일지, 그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만큼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