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아침, 충청남도 어느 마을 공동묘지. 상민은 새벽 여섯 시에 대전을 출발했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해서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비탈을 올라가니 아침 이슬이 풀밭에 남아 있었다.
나 도착했어. 할아버지 산소 잘 있네.
오빠 혼자 갔어요? ㅠㅠ 고생해요
고생해 형
괜찮아. 날씨도 좋고. 근데 수진아, 재호야.
왜요?
할아버지 비석 바로 옆에 다른 비석이 있어.
공동묘지잖아 그냥 옆 묘 아냐
아니. 진짜 바로 붙어 있어. 우리 할아버지 땅 안에.
어머...
그리고 이름이 없어.
네?
이름이 없다고?
응. 아무 글씨도 없어. 그냥 돌이야.
이거 봐봐. 이름이 아무것도 없어.
오빠... 이게 뭐예요
진짜 아무것도 없네
응. 이상하지? 할아버지 비석하고 50센티도 안 돼.
우리가 어렸을 때도 있었어요?
나도 처음 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형 거기 마을 어르신 없어
지금 나밖에 없어. 아직 이른 시간이라.
상민은 비석 주변 풀을 손으로 천천히 헤쳤다. 돌이 생각보다 깊이 박혀 있었다.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잠깐, 돌 밑에 뭔가 있어.
오빠 조심해요!!
작은 도자기 조각이야. 오래전에 뭔가 묻어둔 것 같은데.
건드리지 마 형
응, 안 건드렸어. 눈으로만 봤어.
오빠, 엄마한테 물어봐요. 엄마가 알 수도 있잖아요.
그래. 전화해볼게.
물어봐
잠시 후
엄마한테 전화했어.
뭐래요??
엄마가 처음에 말이 없으시더니. 알고 있대.
알고 있어요?
뭐?
응. 할아버지가 직접 두신 거래. 오래전에. 아무 말 없이.
누구 거예요?
엄마도 잘 모른대. 할머니도 말씀 안 하셨대. 근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혼자 여기 자주 오셨다고.
혼자?
응. 제삿날도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봤대.
ㅠㅠ
엄마한테 더 물었어. 누구냐고. 그러니까 엄마가... 할아버지가 딱 한 번 말씀하셨대. "먼저 간 사람"이라고.
먼저 간 사람...
그게 다야?
응. 그게 다야. 엄마도 더는 못 여쭤봤대.
상민은 비석 앞에 천천히 앉았다. 바람이 불어 주변 풀이 흔들렸다.
수진아, 재호야... 나 지금 여기 앉아 있어. 바람이 좀 부네. 두 비석이 나란히 있는데... 이상하게 쓸쓸하기도 하고, 또 따뜻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혼자 여기 오셨던 거 있잖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누군지는 몰라도, 할아버지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었겠지.
오빠 ㅠㅠㅠㅠ
응...
나 과일이랑 막걸리 조금 거기도 놓고 왔어. 할아버지 거 옆에.
잘했어요 오빠. 정말 잘했어요 ㅠㅠ
잘했어 형.
누군지는 몰라도. 할아버지가 이 사람 옆에 계시고 싶으셨겠지. 그러니까 여기 두셨겠지.
맞아요. 이제 둘이 같이 있네요.
응.
나 이제 정리하고 내려갈게. 다들 조심히 와.
오빠도 조심히 와요. 수고했어요 진짜 ㅠㅠ
형 오는 길에 밥 먹고 와
응. 고마워.
상민은 차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두 비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름 없는 돌은 작고 오래되었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