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岳山地图上没有的路
B2 · Nature & Adventure
준혁은 아버지의 낡은 서재를 정리하다가 그 지도를 처음 발견했다. 낡은 수첩 사이에 끼워져 있던 그것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린 설악산 지형도였다. 공식 등산 지도와 비슷해 보였지만, 능선 하나가 달랐다. 아버지의 익숙한 손글씨로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대청봉에서 북동쪽으로 600미터, 참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에서 왼쪽." 그리고 맨 끝에는 단 한 줄. "아무도 모르는 곳."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 지나 있었다. 준혁은 그 수첩을 배낭에 챙겼다. 유골함도 함께였다.
10월의 설악산은 단풍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부터 사람들이 붐볐다. 가족 단위, 연인, 등산 동호회 조끼를 입은 중년들. 준혁은 그 활기찬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목적지가 달랐으니까. 대청봉 정상에 도착했을 때, 준혁은 숨을 고르며 지도를 다시 펼쳤다. 아버지의 지도에 표시된 방향은 공식 탐방로 어디에도 없는 험준한 능선길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을까. 발 아래로 바위가 흘러내렸다. 키 작은 관목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어 길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정식 등산로가 아닌 게 분명했다.
참나무 세 그루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작은 분지가 나타났다. 사방이 바위와 낮은 소나무로 둘러싸인, 작고 평평한 공간이었다. 안개가 분지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그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분지 한가운데, 돌무더기 하나가 있었다. 이끼가 돌의 테두리를 덮고 있었다. 준혁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아래쪽 돌에서 글자를 발견했다. 아주 작게, 못 같은 것으로 긁어 새긴 두 글자. '현식.'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준혁은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떤 장소는 공유되는 순간 그 의미가 달라진다.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도를 남겼다. 준혁은 배낭에서 유골함을 꺼냈다. 하산하는 길에 준혁은 아버지의 지도를 한 번 더 꺼냈다. 지도 뒷면에는 빛에 비추어 보자 연필로 희미하게 쓴 글자가 보였다. "가고 싶으면 가라. 네가 갈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준혁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