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58분 — 자갈치 새벽 경매장
경매장 형광등이 파랗게 번지는 새벽. 박성태는 스티로폼 상자 사이를 걷다 21번 구역 앞에서 멈췄다. 파란 테이프가 대각선으로 붙은 상자. 자기만의 포장 방식이었다.
창민아
야 창민아 전화 받아라
이창민
응답이 없다. 성태는 모자 챙을 올리고 21번 구역을 살폈다. 경매 번호패에는 낯선 이름이 붙어 있었다. '대흥수산.'
준서야
네?? 아버지 이 시간에 왜요
창고 CCTV 앱 지금 켜봐라
갑자기요? 무슨 일이에요
빨리
잠깐만요
...아버지
어젯밤 11시 17분부터 화면이 검정색이에요
그래
CCTV가 꺼진 건데... 이거 원래 꺼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맞아
설마요 아버지 😰
경매장에 우리 상자 나왔다. 21번 구역.
네?????
파란 테이프 대각선 두 줄. 우리 포장이야. '대흥수산' 이름으로 올라와 있어.
아 혹시 비슷하게 생긴 거 아닐까요 다른 업체도 그렇게 할 수도 있잖아요
준서야. 그 테이프 각도 내가 직접 정한 거다.
...
창민이 어제 몇 시에 퇴근했어
6시요. 어제 야근 없었어요.
그러면 11시에 다시 들어간 거네.
대표님 문자가 많이 와있네요 ㅎ 화장실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성태는 화면을 바라봤다. 새벽 네 시에 화장실. 전화는 안 받고 문자만.
창민아. 경매장에 우리 멸치 상자가 나왔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21번 구역. 지금 '대흥수산' 이름으로 경매에 올라와 있어.
저도 모르는 일인데요 대표님 혹시 다른 업체 거 아닐까요
창민아. 어젯밤 11시 17분에 창고 CCTV 왜 꺼져있어.
...
그게 저도 잘 모르겠는데 기계가 오래돼서 그런 거 아닐까요 ㅎ
창민 씨 어젯밤에 창고 다시 가셨어요?
아니요 저는 퇴근하고 집에만 있었는데요
준서야. 지금 창고 가봐라. 직접.
지금 새벽 4시예요 아버지
알아. 가봐.
...알겠어요
새벽 4시 11분 — 경매 호가 시작
사회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1번 구역 호가가 시작됐다. 성태는 번호패를 꽉 쥐고 군중 속에 자리를 잡았다.
준서야... 나 지금 저 상자 낙찰 받으려고. 우리 돈 주고 우리 거 사는 거 알아. 근데 상자를 직접 열어봐야 확실하거든. 창민이한테 아직 아무 말 하지 마라. 알겠나?
네 알겠어요. 지금 도착했어요.
아버지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요
📷
문 열려있나
네. 살짝요.
들어가서 2번 선반 확인해봐. 프리미엄 멸치 박스 몇 개 있나.
잠깐요
...
아버지 2번 선반 절반이 비어있어요
몇 박스
세고 있어요
22개 없어요
대표님 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는데
창민아.
2번 선반 멸치 22박스 어디 갔어.
...
대표님 저는 정말
됐다.
성태는 번호패를 들었다. 사회자가 그를 봤다. 호가가 올라갔다. 그는 두 번 더 패를 들었다. 낙찰.
받았다
낙찰요?? 우리 돈 주고 우리 거 사는 거예요?
증거 확보해야지. 상자 열어봐야 아니까.
아... 맞다
아버지 안에 진짜 우리 멸치 있어요?
성태는 상자를 열었다. 파란 뚜껑 안쪽, 익숙한 건어물 향기. 그리고 그가 직접 쓴 내부 로트 번호. 자신의 필체였다.
우리 거 맞다.
로트 번호까지 내 글씨야.
😶
대표님
죄송합니다
성태는 멈췄다.
창민 씨...
딱 한 번만 한다고 했는데요. 돈이 급해서 처음에 두 박스만 했는데
대흥수산 사장이 계속 연락이 와서
죄송합니다 대표님 진짜 죄송합니다
몇 번 했어.
...다섯 번이요
22박스요
언제부터
두 달 됐어요
두 달이요 😭
...
내가 니 아버지 장례 때 봤다. 조퇴도 다 챙겨줬어. 10년이야.
...
알아요
그래서 더 죄송해요
창민아.
오늘 출근하지 마라.
...네
준서야. 문 잠가라. 창민이 키 수거해라.
네 아버지
아버지 지금 괜찮으세요?
경매장 사람들이 다음 구역으로 이동했다. 성태는 멸치 상자를 손수레에 올리며 오른손 등의 흉터를 내려다봤다. 스물여섯,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던 기억이 겹쳤다.
괜찮다.
나중에 얘기하자.
네... 🙏
성태는 전화기를 조끼 주머니에 넣고 손수레를 밀었다. 새벽 경매장의 냉기가 목까지 올라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