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nim spadnie śnieg, zniknie stragan
B2 · Culture & Travel
이지수가 그 포장마차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직장 동료 민준의 입을 통해서였다.
"어, 나 어제 청계천 쪽에서 봤어. 파란 비닐 천막에 노란 전구 달려 있고, 할아버지 혼자 운영하시는 데. 순대가 진짜 기가 막히던데."
지수는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다. 서울에 포장마차가 한둘이 아니니까. 그런데 민준이 다음 말을 덧붙였을 때, 뭔가가 등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상한 게, 첫눈 오기 전날이면 꼭 사라진댔어. 단골들 사이에서 유명한 얘기야. 눈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도망친다고."
그날 밤 지수는 오래전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할머니와 함께 어디선가 포장마차에 들어가 먹었던 순대국. 연기 자욱한 냄비, 할머니의 두꺼운 손. 기억이 너무 흐릿해서 장소조차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 맛만은 혀 끝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됐다.
지수는 그 후 두 번이나 청계천 주변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파란 천막은 없었다. 민준에게 물었더니 그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나도 딱 한 번 봤어. 그다음에 찾으러 갔더니 없더라고."
11월 셋째 주 목요일, 퇴근길에 지수는 다시 청계천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이번엔 딱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바로 가기가 싫었다. 오늘 같은 날은 특히. 오늘은 할머니 제삿날이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공기에서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경험 많은 사람만이 구분할 수 있는, 약간 철 냄새가 섞인 그 냄새.
청계천을 따라 걷다가 지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다리 밑 골목 어귀, 거기 있었다. 파란 비닐 천막. 노란 전구. 연기.
포장마차 안에는 손님이 두 명 있었다. 중년 남자가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그 옆으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어묵 국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지수는 천막 끝 자리에 앉았다.
"뭐 드릴까요?" 주인 할아버지는 나이가 몇인지 가늠이 안 됐다. 얼굴에 주름이 깊었지만 눈이 맑았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지수를 바라봤다.
"순대국이요. 그리고 소주 한 병."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냄비 쪽으로 돌아섰다. 가스불 위에 커다란 뚝배기가 올려져 있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허연 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지수는 소주잔을 꺼내 혼자 따랐다. 마시지는 않고 그냥 잡고만 있었다. 맞은편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묵 국물을 마시던 여자는 잠시 후 자리를 떴다. 포장마차가 조용해졌다.
"오래 찾으셨어요?" 할아버지가 순대국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수는 잠깐 당황했다. "네?" "여기를요." 할아버지는 낡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덧붙였다. "한 번에 찾는 사람이 없거든요, 여기는." "두 번 왔었어요. 못 찾았고요." "그렇죠." 할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설명을 더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순대국은 뜨거웠다. 첫 숟갈을 뜨는 순간, 지수는 손을 멈췄다. 이 맛이었다. 3년 동안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맛. 들깨 향이 은은하게 깔려 있고, 국물이 텁텁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어디서 먹어봐도 이렇게까지 비슷한 적이 없었는데.
"저, 혹시," 지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오래 하셨어요?" "30년 됐어요." "그럼 제 할머니를 아실 수도 있겠네요. 이름이 박순자인데."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잠깐 지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오래된 피로 같기도 했다. "손님들 이름은 잘 기억을 못 해요. 얼굴도 다 기억 못 하고."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어딘가 조금 서운했다.
"근데," 할아버지가 소주잔에 소주를 조금 따르며 말했다. "자주 오시던 분들 중에 손녀 얘기 많이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잘 먹는다고, 자기를 닮았다고."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나온 건 한 시간쯤 후였다. 소주를 반 병 마셨고, 순대국은 남기지 않았다. 골목을 나서는데 차가운 것이 뺨에 닿았다. 하나, 둘. 눈이었다. 지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서울의 첫눈은 언제나 소리 없이 왔다. 굵지 않고, 조용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뒤를 돌아봤을 때, 포장마차는 아직 거기 있었다. 파란 비닐이 바람에 약간 흔들리고, 노란 전구가 눈 속에서 더 따뜻해 보였다.
할머니가 처음 데려갔을 때, 지수는 몇 살이었을까. 다섯, 아니면 여섯. 기억이 맞는다면 그날도 눈이 왔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눈 오는 날은 꼭 따뜻한 데서 뭔가를 먹어야 해. 그래야 겨울이 무섭지 않거든." 눈이 찾아오기 전에 사라진다던 포장마차는, 사실 눈이 오는 날에도 거기 있었다. 아니면, 지수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걸 알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